나 코판거 아냐!


 서부교육지원청에서 5년을 보내고 올 해 신혼집에서 가까운 성동교육지원청으로 발령이 났다.
5년은 긴 세월이고, 6개월 동안 날마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두 세시간을 시달리다 보니 '다 필요없다. 집에서 가까운게 최고다!' 했는데 집에서 10분 거리이면서 우리 아파트와 구역은 다른(그러나 동네 마트에선 마주칠 가능성이;;)학교로 배정되고 학교내에서도 지원한데로 5학년 담임이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엉덩이 무거운 이 조직도 조금씩은 진화하는구나 싶었다.

 새 학교는 업무 결정과정이 깔끔하고 합리적이다. 이동한 젊은 선생은 당연한 듯 6학년 담임이 되고 기타 업무도 왕창 맡게 되는것을(눈물 쏙 빠지게 겪어서) 어느 정도 각오까지 했는데, 지역적인 차이인지 교장 교감 선생님의 성향과 능력 차이인지 이전의 학교와 많이 차이가 나고 무척 마음에 든다. 예를 들어 힘드는 고학년을 맡으면 잡무를 줄여주는 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학교 분위기나 학생들의 지적수준 정서적인 안정감, 학부모님들 스타일도 놀랄 정도로 참 많이 다르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다른 지방과 서울은 또 얼마나 다를까.

 우리반 아이들은 학습 태도가 무척 좋다. 가르치는 그 순간에도 스폰지처럼 샥~ 흡수하고 있는게 바로바로 느껴져서 수업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니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러나 어디에 있던 그 나이 또래의 아가들은 다~~~같다.

 점심시간,  S양이 엄청 서럽게 엉엉 울면서 급식을 받고 있다.
'먹기 싫다는 반찬을 급식당번이 많이 줘서 그런가?' , '누가 새치기 했나?' 궁금했지만 일단 가만히 두었다. (아이들이 엉엉 울 때는 마음껏 울 때 까지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낫다.) 
급식을 다 받은 S양, 자리에 앉아 조금 더 울다가 드디어 그치고 밥을 먹으려는 순간 여학생들이 우루루 몰려가서 "S야, 왜 울었어?" "무슨 일이야?"  왜그래?" 묻기 시작한다. 그랬더니 다시 펑펑 울기 시작하는 S, 급식에 젓가락 한 번 안 대고 그대로 버리더니 계속 운다.
걱정되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아이를 토닥거리며 같이 복도로 나갔다.

"코 판게 아니라 간지러워서 살짝 만졌는데 W가 코판다고 막 놀렸어요!"
...S양이 코판다고  W군이 놀렸단다. 
어디나 코 파 사건이 생기는군 ㅋㅋ (J가 코 파 사건)

 복도에서 장난치고 있는 W군을 긴급 소환, 양자 대면을 시켰다.
W군에게 물어보니 코팠다고 놀린거 맞단다.

 작년부터 잘 활용하고 있는 I message 표현법.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선생님 따라해 봐~"하곤 대사를 불러줬다.

"네가 내 행동을 오해하고 놀려서 나는 기분이 나빴어."
"S야 맞지? 또 하고 싶은 말 있어?" 없단다.

"미안해. 너가 속상한 줄 몰랐어. 앞으로 조심할게." W야 S가 그것 때문에 우는거 몰랐지?"

둘이서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하더니 내 의도대로 "괜찮아~"로 마무리까지 훈훈하게 한다

"W야, 선생님이 진짜 코 막 파고 있는데 너가 그걸 보고 큰 소리로 '선생님 코파신대요~'하면 선생님도 무척 속상하고 부끄러웠을 것 같아"
이 녀석들 내가 코 파는 장면을 상상했는지 같이 막 웃는다.

W야,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장난처럼 한 말이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거야.끄덕끄덕.

S야, 앞으로 속상한 일이 생기면 어떤 행동 때문에 속이 상했는지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얘기해. 너도 화가 덜 나고 상대도 조심하게 기회를 줘야지.끄덕끄덕.

6교시 끝나고 S양, "선생님! 하늘이 완전 노래요~ 점심 하나도 안 먹었더니 배고파 죽겠어요! 에이 조금이라도 먹을껄 그랬어요!한다.
 
...풀렸구나! ^^


by 두두 | 2013/04/06 22:18 | School Of 樂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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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억지로 채우지 않아도 at 2013/04/06 22:26

제목 : J가 코 파~!
J가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든다. 워낙 정신세계가 특이하다 보니 엉뚱한데서 삐지고 못마땅하면 기분좋게 봐 주기가 힘든 특이한 행동을 한다. 점심 시간에 양치를 하고 왔는데 그 잠깐 사이 또 일이 터졌다. "선생님 정석이가 종이에 태웅이 그려놓고 못으로 찍고 있어요"우엥? 이건 또 뭐야? J는 소리 지르고 울면서 저주풀이(종이에 얼굴을 그리고 이름까지 써 놓고 못......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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